꾸준히 싫어하는 것도 능력이다.
내 이야기 2011/12/30 03:05 |뭐 여하튼, 그렇게 나와 너의 기준이 다를진대, 내 기준을 오해하는 친구들이 간혹 있다. 이런 친구들이 스테레오타입은 다음과 같다. 부모님의 은덕을 자신의 여유인줄 알거나 군대 안다녀왔거나, 둘 다거나. 학기 중에 만나는 친구들마다 늘 '봐봐, 내 안의 꼰대가 이렇게 커졌어!'라고 개드립을 쳤는데, 사실 이건 좀 걱정이다.
그래서 정말이지 전역하고 처음으로 현역 간지로 '미쳤냐?'를 내뱉기도 하고, 다 귀찮다며 척을 지고 아예 안보기도 한다. 정말 나는 이런 거 없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빠뜨리고 터지길래 스물세 살 싸이월더처럼 슬펐다. 하루키처럼 런닝한 체력으로 카프카처럼 섹스하기도 아까운 이 시간에 이따위 것에 정력을 써야 하다니! 내가 아무리 남는 게 시간뿐이지만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깝다.
속 편하다. 내가 저지른 창피한 일을 만회하는 건 빠르게 잊어먹는 건데, 이게 내 잘못뿐만 아니라 안좋은 일 전부에 즉효더라. 멀쩡하게 잘 살게 된다. 여기에 '남자가 뭐 그렇게 사소한 거 가지고...' 한 번 써주면 주민등록 말소되듯 깨끗하게 사라진다. 다시 언급하면 남자도 아니고, 째째한 거고, A형인 거고, 소심한 거고, 블라블라. 사내색기 혼자서도 까페에 갈 수 있는 내 안의 여성성 덕분에 이런 이야기 나오면 내가 좀 힘들다. 그래서 걍 소녀감성으로 사는 게 나은 거 같기도 하고...
다 좋은데 감정보다는 사실이 안 없어지더라. SNS에 뺴곡하니 적어놓은 것도 아니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건 별 상관없는데 내가 암. 이-상하게 쪽팔린 거랑 빡친 거랑은 안 잊혀짐.
그니까 계속 싫어해야 맞아 떨어지는 건데, 사람이 워낙 착하다 보니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욕을 하거나 싫은 내색을 하는 건 눈 앞의 상대방이나 남에게 그 감정을 던지는 것이기에 내게 남지는 않는다. 평소 대화중에도 쌍시옷 단어나 속어 많이 쓰는 편인데, 이건 또 대화 속에 흘러가는 편이라 쓰는 나나 듣는 친구들이나 별 감흥 없다. 들리지만 걔들에게 한 것은 않으니까. 덜 친하거나 좀 서먹한 사이면 여기서 호오가 갈리곤 한다. 나 또한 덜 친한 사람이 씨발과 존나를 연신 뱉어내면 마음 속 미간부터 찌뿌려진다.
싫음을 유지하는 것은 이와는 좀 다르다. 악감정을 내가 계속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늘 그 개체를 싫어하고 있어야 하며 그 생각만 나면 늘 얼굴을 일그러뜨릴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게 생각보다 고된 정신 노동이다. 외사랑은 설혹 어장에 들어가 있어도 좀 애틋하고 다소 희뿌얘도 따뜻한 게 있는데, 여긴 뭐 답이 없다. 지쳐서 못하겠다. 근데도 해야 하는 게 함정. 기억에선 잠깐 잊혀져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개새끼는 계속 개새끼고 샥련도 계속 샥련. 아아, 섬머 이 샥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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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 섬머 디스... 아 또 빡치네요;
아, 인스타그램에 주이드샤넬 언니가 있는데도 팔로우 안하고 있어요. 괜히 싫어요!
21세기 수유리의 아큐정전이 요기잉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싫어하니까 청춘인듯여.
섬머가 꼭 년이라는법은 없음-놈도 있던데?
그래서 기억에서 잠시 잊혀져도 생각은 계속 나대?
암튼 나잇값못하는게 문제야. 우린 이제 더이상 어리지않은데 어리다고 생각하나봐.
나 지금 뭐라 그러냐?
김수철이 부릅니다.
정신차려 이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