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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흘려 듣는 이야기 2009/06/27 01:16 |
일주일 전에 딸기뿡이로부터 '나의 독서론'이란 릴레이를 받았다. 근데 뭐라고 써야 할지 막막하다. 생각해보니 꽤 오랫동안 책을 안 읽었잖아? (잡지와 만화 등을 독서에 넣진 말자.) 릴레이를 깨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입에 침 바르고도 거짓말을 못하겠네.

아직 한글 깨우치려면 까마득하게 멀어서 그런지 '~론' 접미사를 쓰는 낱말을 볼 때마다 정신적인 경기를 일으킨다. 유물론, 방법론 따위를 마주칠 때마다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곤란해하는데 - 시발 한글인데 해석까지 해야 해! - 그래도 알고 넘어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문장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노라면 내 자신이 애처로울 따름이다. 수 년 전부터 독서와 독해를 구분하지 못하고 글 읽는 게 한창 익숙하던 초, 중학생 때답지 않은 데다가 '난독증'이란 낱말을 인터넷에서 자주 보게 되니 혹시 나도 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책을 고르는 취향도 상당히 좁아져서 실용서는 그저 실용서라고 읽지 않고, 유명한 책들은 어렵다고 읽지 않는다. 마치 죄와 벌에 나오는 등장인물 이름이 너무 길어서 읽기를 포기했다는 변명을 아주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것과 같은 이치. 그래서 주로 소설을 찾곤 하는데 정작 내가 쓰는 건 수필에 가까우니 이건 뭔 지랄인지.

독서의 사전적 의미인 '책을 읽음'에 비춰보았을 때, 글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책에 한정되지 않는 작금에는 사람들이 말하는 독서론을 정의하는 것은 다소 아날로그스럽다. 아날로그스럽다는 의미는 대체로 일상적이지 않다는 말과 같은 뉘앙스를 가지는데,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 등의 비인쇄 매체를 통해 수많은 글을 읽지만 그 것이 독서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딴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 장난을 이어가다 보면 나는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것이고, 최근의 독서랍시고 했던 걸 생각해보면 독서라는 말을 하기엔 이건 뭔가 낮게 땅에 닿을 것 같게 슬퍼져서 안구에 습기가 차고 눈물이 주룩주룩 흐를 뿐이다.

그래,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내가 독서론을 이야기하는 사실이 상당히 무의미하다는 것을 읽다가 짜증나서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아직 어려움이 없는 나이라서 독서든 글(text)을 읽는 것이든 읽은 만큼 더 성장한다. 이는 다시 글을 쓰거나 내가 말을 하는데 모두 유효하게 작용해서 '읽기'가 내게 긍정적인 도움을 주는데엔 어떤 식으로든 반대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내가 글 쓰는 방식이 독서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인터넷이 없으면 안되는 세대답게 속담보다는 인터넷 은어와 속어에 익숙하며 한글보다는 영어 수식어구를 자주 쓰는 전형적인 20대기에 보는 만큼만 쓰게 된다. 반대로 지금 내가 쓰는 표현방식은 절대로 책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다고 자랑스러운듯 목을 빳빳히 세울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구어체의 한계는 (지금으로썬) 명백하다.

게으름뱅이는 알고도 행하지 못한다. 서적 구입이 가장 용이한 시대에 가장 질 좋은 서적이 출판되는 몇 안되는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책에 관해서 이런 이야기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역시나 게으름뱅이는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
Posted by CI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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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7 05:28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olidground.kr BlogIcon CIDD 2009/06/27 08:48 Address Modify/Delete

      영향을 받고 고대로 빌려 쓰는 것을 봐서는 text loan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으니 '읽기'로 도움을 받는 건 확실하지만

      솔직히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라서 내 독서는 어떻다 이야기하는 건 부끄러워. 거짓말은 파고 들면 결국 새까만 게 보이니까. 그리고 뭘 사더라도 책보다는 음반이 우선 순위에 있고 최근엔 그 것보다 가장 위에 의류 구매가 위에 있어서 독서론이니 text론이니를 따지는 게 민망할 정도다;;;

      그래서 독서보다는 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텍스트 읽기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

  2. Favicon of http://think-of.tistory.com BlogIcon ▷나상 2009/06/29 13:58 Address Modify/Delete Reply

    헐킈.. 리플위에 살아숨쉬는 라임

  3. Favicon of http://hiimyoungho.com BlogIcon young 2009/06/30 14:56 Address Modify/Delete Reply

    글은 안 읽었는데.
    읽으려고 펼쳐놨는데 인터넷하는거 걸렸다 윽ㅎㅎ

    • Favicon of http://solidground.kr BlogIcon CIDD 2009/06/30 18:21 Address Modify/Delete

      나 방금전에 NSFW라는 단어를 배웠는데
      TBFS는 그런 게 되어버렸나요...

  4. Favicon of http://rx78gdam.tistory.com BlogIcon 심줒보 2009/12/14 10:22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olidground.kr BlogIcon CIDD 2009/12/14 15:43 Address Modify/Delete

      여름에 쓴 글을 칭찬받으니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입이 근질근질거릴 떄는 딱 두가지다. 뭔가 시원스레 자랑하고 싶거나, 대화의 흐름이 끊어져서 뭐 때문인지 알지만 쉽사리 손대기 힘든 정적이 이어질 때. 서울에 살고 있지만 한강 이북이라 그리 쿨하진 않아서 자랑거리가 있어도 아무 것도 몰랐던 척 어어 그랬었어, 별 거 아냐, 뭐 그런 거 가지고 정도로 모던하고 시크하게 넘어가지도 않거니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야기가 끊겨서 고요해지는 그 찰나가 3년 같이 길게 느껴져서 뭔가 화제꺼리로 적당한 것들을 말한다. 그 때부터 엠바고고 나발이고 스스로 무장해제된다. 트랜스포머에서 기계들이 에어포스원 컴퓨터로 국방성을 해킹하듯이 쭉쭉 뽑아낸다.
Posted by CI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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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7 20:3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olidground.kr BlogIcon CIDD 2010/02/18 21:26 Address Modify/Delete

      아이코, 공개를 해놓은지 안해놓은지도 모르고 있던 글에 댓글을 달아주셨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평소 주절주절 말이 많은 편이라 사고도 많습니다. 조절을 해야하는데...라고 생각한 게 어언 20여년이군요. 캬캬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