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4/13 너까지 신경 써야 하면 내가 좀 슬퍼지잖냐 (14)
같이 집에 가던 애가 말했다. "어차피 매일 보는 길이잖아." 어라, 그렇지. 생각해보니 5년째 같은 길을 오고가던 중이었다. 잠시 까먹었네. 묘하게 동의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애의 말을 시작으로 하교길은 점차 짧아졌다. 주말의 명화에서 축지법을 봤지만, 쓸 줄 몰랐던 우리는 대신에 부지런히 걸었다. 셋이 똑같은 걸 하고 있으니 재밌는 일 같기도 했다. 어차피 매일 보는 길이잖아.

그 후로 등교길을 3번 정도 바꿔가면서 점차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없는 곳이 학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걷는 속도는 5학년때 이후로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는 여자와 같이 가도 빨리 걷는다. 여자는 숨이 차다며 내 옷자락을 잡았다. 이해하지 못했다. 군대에 가서야 옆사람과 발 맞춰 가면 천천히 걸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여자와 걷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차츰 익숙해졌다.
얼마 전, 5학년을 같이 걸었던 친구와 동네를 조금 걸었다. 지하철 역으로 2 정거장 정도. 수유역에 도착할 즈음에서야 친구는 따라가기 힘들다며 투덜거렸다. 마침 친구가 그의 여자친구와 걷는 속도를 맞추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던 타이밍이었다. 내심 실망해서 네가 그러면 안되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뭐라 변명을 한 것 같았지만 들리진 않았다. 사내놈에게까지 걸음을 맞춰줘야겠냐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Posted by CIDD
TAG

Trackback Address :: http://solidground.kr/trackback/505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think-of.net BlogIcon ▷나상 2010/04/13 11:1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내 기억에 넌 분명 축지법을 써왔던 것 같다..

    • Favicon of http://solidground.kr BlogIcon CIDD 2010/04/13 22:31 Address Modify/Delete

      말 안하면 죽어도 모른다. 가끔 만두는 힘들다곤 하드라.

  2. Favicon of http://moongsiri.tistory.com BlogIcon 딸뿡 2010/04/13 11:18 Address Modify/Delete Reply

    마지막 문장에서 '피식'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애도를 표해줘야 하나 ㅠㅠ
    느릿느릿 걷는 것 같은데, 걸음이 묘하게 빠른 거 인정 ㅠㅠ

  3. 훵클 2010/04/13 11:4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거이거.. 아무래도 우월한 다리 길이에서 오는 사소한 걱정이라고 보여지는 말투인데요...

    • Favicon of http://solidground.kr BlogIcon CIDD 2010/04/13 22:33 Address Modify/Delete

      제가 신체 비율이 시망똥망엉망입니다. 저도 다리 좀 길어서 바지 밑단 좀 안 잘랐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내려 입으니 아무 상관 없네효?

  4. Favicon of http://www.delic.pe.kr BlogIcon Delic 2010/04/13 15:0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거 완전 공감글이로군요!
    저는 기럭지가 짧은 대신 걸음이 정말 빠르거든요, 동행이었던 여자분들한테 욕 얻어먹은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 Favicon of http://solidground.kr BlogIcon CIDD 2010/04/13 22:35 Address Modify/Delete

      델릭 브로는 살인미소에 미소년이니까 괜찮습니다. 시원하게 웃어주세요!

  5. 시혀 2010/04/15 10:1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나도 다리 기럭지에 비하면 걸음이 빠른 편이지만
    ...기럭지의 차이는 도저히 극복 못 하겠더라 OTL
    흥, 키 큰 것들 따위!!!!

    • Favicon of http://solidground.kr BlogIcon CIDD 2010/04/16 16:25 Address Modify/Delete

      키를 생각하면 누나는 엄청 빨리 걷는 거에요.
      덕분에 그때는 오랜만에 긴장탄 상태로 걸었지 ㅋㅋㅋ

  6. Favicon of http://hjuun.tistory.com/ BlogIcon h.juun 2010/04/15 21:45 Address Modify/Delete Reply

    바지를 많이 내려입을 당시, 보폭이 좁아지는 관계로 걸음의 속도를 늘려 빨리걸어야 보통 속도가 나왔는데, 그 때보다 짧아진 밑위와 올라간 바지에 그때의 걸음걸이가 남아 어느덧 축지법 비슷한 외공이 생긴듯 하더라구요. 하하하. 지금 생각하지만, 걸음걸이를 타인에게 맞출줄 안다는 건 정말 섬세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 Favicon of http://solidground.kr BlogIcon CIDD 2010/04/16 16:27 Address Modify/Delete

      그러게요.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고 저도 사내놈들에게는 계속 모른 채로 있고 싶고...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7. 마리 2010/04/22 15:4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전 빨리 걷는다고 걸어도 안되요.
    맨날 쳐저서 살짝 뛰어줘야 해요.
    전체적으로 짧아서 그런가봐요...ㅜㅜ

    • Favicon of http://solidground.kr BlogIcon CIDD 2010/04/24 11:49 Address Modify/Delete

      먼저 가는 사람 뒤통수를 한 번 후려쳐주시면
      그 다음부터는 신경을 쓰지 않을까요. 캬캬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