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수 백오십의 시야
내 이야기 2011/05/13 22:08 |그리도 원하지 않았던 4학년이 되고나니 나는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고 이제까지 이 짓를 해왔나 하는 소회가 생긴다. 결국, 얼마간의 월급과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지위가 이제껏 놀아 제껴온 시간의 데칼코마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얼마를 받고, 그 얼마로 어떤 걸 사고, 어떻게 쓰고 하는 것보다는 얼마가 있어야지 사람답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밥 굶고, 옷 기워입는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을까.가 느닷없이 대내적인 화두로 기어 올라왔다. 시험기간 때 책상 정리한다더니 막상 돈 벌고, 빚 갚아야 할 때 되니 유난스럽게 이지랄을 떨고 있다.
최근 1~2년간의 아르바이트는 의외로 짭짤해서 그간 88만 원도 못 벌었기 때문에 나는 88만원세대에 포함되지 못한다며 혼자 중얼거리던 게 무안해졌다. 성인 피시방이나 사설 경마장 같은 데에 가서 한 달에 이삼백 번 것도 아니고 고작 이삼십만 원이 늘어난 것뿐인데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느긋해졌다. 여기서 혼자 월세방 잡고 산다치면 월 백오십으로 적어도 굶진 않는 생활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죽진 않는다.와 살 수 있다.의 중간 지점,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는 정도.
추정치 월수 백오십은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생활의 심정적인 마지노선이다. 매번 퇴근과 동시에 일당을 받는 생활은 수도꼭지 끝에 매달려있는 물방울 하나에 의지하고 사는 것 같아서 목마름은 해갈한다 치더라도 시원하게 마실 수 없어 답답해 미칠텐데, 월급으로 받게 되면 그나마 낫다.
다만 그나마.에서 변하지 않는다. 보험료 뗀 돈으로 월세 내고, 밥 먹고, 교통카드 충전하면 지갑이 마르기 전에 이미 지쳐버린다. 맘 달랜다고 맥주 한두 캔 따다 보면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다시 원위치.
나이도 많아서 인터넷도 안하고 보는 것도 고만고만하면 그냥 촌부처럼 살 수 있을텐데, 역시 모든 문제의 원흉은 인터넷이다. 모르고 사는 게 정말 편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고 내가 너무 알아버린 사람도 아닌데 말이지. 정보에 대한 접근이 자연스러워지면서 행복의 기준은 한없이 올라가버렸다. 포항에서 만났던 그 택시 기사는 과연 마이바흐와 마세라티를 알고 있을까. 그 아저씨와 나 둘다 그 차를 못 타보긴 마찬가지일텐데. 이름이나마 그걸 알고 있는 나는 과연 행복한 것인가.
휴학하고 나서야 대학생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가 보였다. 자신은 이미 대학생이란 신분이 어느 정도의 지식 수준과 교양, 사회적인 위치를 함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또래 중에 대학생이 아닌 사람을 찾아봐라. 그리곤 네 무력함을 증명해봐라. 기껏 기천만원을 써서 대학을 가고, 또 다시 기천만원을 써서 대학을 졸업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미 사회는 대학졸업생이 만연하고, 이런 대졸자 인플레는 대학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근데 가성비는 나쁘다. 하지만 이미 투자한 금액이 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부어야 한다. 천상 밑빠진 독인데 물도 내 물이 아니고, 어디서 사온 물이네. 수학이라고는 중학교 2학년 1학기부터 내려놓기 시작했는데 이자율 계산을 해야 한다. (사실, 아직도 엄두가 안나서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은 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공부를 해야할 필요에 대해서 회의를 가진다. 그 수많은 지식을 수천만원을 들여가며 배운 것의 결과가 이따위로 나오니, 그간 배운 지식으로 판단해보았을 때 이는 심각하게 비효율적이다. '교육'에 가격대 성능비를 대는 것에 미간을 찡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실이니까. 장하준은 나쁜 사마리아인의 서문에서 자신의 (10살도 안되는) 아들의 예를 들면서 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일정 연령이 지났을 때 노동시장으로 보내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 했다. 나는 반박할 수 없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은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지만, 살기 위해 먹는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1+1 행사 제품을 찾아보고, 햄버거 가격이 비싸진 것보다 배부르지 않은 것에 실망한다. 생활의 기준이 진리 탐구나 쾌락이 아니라, 하루를 굶지 않고 넘기는 것에 무게를 두게 될 때, 그 생활의 시야는 무척이나 뿌옇다.
'5천원의 딜레마'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한달 생활비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대충 때려잡아 88만원이라고 하자.) 밖에서 먹는 한끼 식대에 투자할 수 있는 최대치는 5천원이다. 그보다 천원이라도 비싸면 가계부에 무리가 온다고 느낀다. 실제로도 상당히 위험하다. 고작 천원이 더 들 뿐이지만, 곧 죽을 듯이 사양하게 된다. 한시간을 일해서 한끼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심정적, 가계부적 마지노선이니까. 금전적인 여유가 삶의 질을 억누른다. 나는 한달에 백만원 좀 넘게 받는 알바를 시작하니까 이 딜레마를 깨볼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물론 기회비용이 아예 없어진 것은 또 아니고...
한달 벌어 한달 먹고 사는 친구들에게 잉여 생활비는 자신의 시간과 삶의 질보다 높은 가치를 가진다. 사람이 게으르고 부지런한 정도의 차이에 따라 상이하지만, 영순위는 분명하다. 아무리 국민학교때부터 씽크빅하면 창의력이 생긴다고 듣고, 그 창의력은 지금에 와서 월급의 차이를 줄 정도라 왠지 그때의 카피가 되게 그럴싸하게 생각되는데 월수 백오십의 시야는 그리 넓지 못하다. 딜레마는 깰 수 있을지언정 씽크빅해지진 않는다. 좀 더 여유로워지면 그렇게 되려나?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남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이런 것을 논하는 것 자체가 비생산적이고, 고로 비경제적이다. 이럴 시간에 내일의 노동을 위해 푹 자두는 것이 현명하다. 시야가 넓고 좁은 것이 당장 먹고 사는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반박하진 않겠다. "어떻게 사냐?"는 물음에 힘든척 잔뜩 하면서 투덜댈 순 있지만, "왜 사냐?"는 물음엔 말수가 급격히 없어지는 요즘이다.
TAG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 어려운 이야기야... 그나저나 나 2백씩 벌어도 편의점에서 저녁먹고 5천원에 벌벌떨고 그랬는데..;;
하하 밥값 정하기 힘들어요.
사실 도시락 싸서 다니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만 ㅠㅠ
전이 본 글처럼 읽히길래 신기하네 했건만 전에 본글이구나.
리플로 할말을 본문에 다 써놓아서 쓸말이 없구만ㅎㅎ
얼레 너도 읽었었냐;
예전에 잠깐 공개해뒀는데 아무래도 지저분해서 다시 비공개로 돌렸었어; 근데 토씨 하나 안바꾸고 다시 발행했네 허허
오오 대학생이셨군요...몰랐어요. 글을 가끔, 그리고 힐끔거리며 보기는 하는데 문장의 깊이는 항상 저를 놀라게 하시는군요.
아, 부끄럽습니다;
문장은 깊이가 있다기보다는 가난하게 살면 이렇게 나옵니다; 사실 막 갈긴 거라.... 여하튼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에에? 좋은말씀이라뇨..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인 겁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헤헤